사람의 칭찬보다 주님의 눈길
사도행전 13:1-12 · 시편 5 · 예레미야애가 2:13-17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이방 지역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에는 여러 출신의 일꾼들이 모여 금식하며 주님을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기도할 때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맡기실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은 두 사람에게 손을 얹고 기도한 뒤에 그들을 떠나보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문득 이런 물음이 듭니다. 우리는 왜 자꾸 남들에게 인정받는 자리에만 서고 싶어 할까요?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바나바와 사울은 배를 타고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했고, 총독 곁에 있던 마술사 엘루마는 자신의 권세를 지키려고 그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는 신기한 속임수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거짓 예언자였습니다. 총독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온갖 꾀를 내어 훼방을 놓았던 겁니다. 겉으로는 대단해 보여도, 속은 남을 속이는 거짓이었습니다.
바울이라고도 부르는 사울은 성령이 가득하여 그 마술사를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주님의 바른길을 어지럽히는 짓을 멈추라고 꾸짖자, 마술사의 눈에 안개와 어둠이 덮이며 한순간에 앞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마술사는 총독 곁에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뽐냈지만, 바울의 꾸짖음 한마디에 어둠이 덮여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길을 찾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총독은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크게 놀라며 주님의 가르침을 믿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예레미야애가에도 이와 비슷한 안타까운 모습이 나옵니다. 예레미야애가의 거짓 예언자들은 사람들의 칭찬을 얻으려고 달콤하고 헛된 말만 늘어놓았지만, 시편의 시인은 새벽마다 주님께 탄식 소리를 아뢰며 묵묵히 그 뜻을 기다렸습니다. 입술로 아첨하며 제 욕심을 채우는 악한 길을 떠나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큼직한 방패처럼 은혜로 감싸 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직장이나 일상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바랄 때가 참 많습니다. 동료나 이웃과 끊임없이 나를 견주다 보면,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쉽게 서운해지고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곤 합니다. 저도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이 흔들리고 인정받고 싶어 초조해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땀 흘리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면 공연히 헛수고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지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찬찬히 돌아보면, 사람의 시선에 매달릴수록 마음은 더 불안해집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겉모습을 꾸미는 것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마음이 실은 우리 삶을 훨씬 단단하게 지켜 주는 힘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남의 칭찬으로 채운 하루는 금세 흩어지지만, 주님 앞에서 다듬은 하루는 마음에 깊은 평안을 남깁니다. 사람의 인정보다 주님의 눈길을 먼저 바라봅니다.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 사람들의 박수를 좇아 불안하게 흔들릴 것이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정직한 길을 걸어갈 것이냐, 어디에 참된 평안이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의 시선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세상의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 쉬이 흔들리는 저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헛된 박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우리를 묵묵히 지켜보시는 주님의 눈길 앞에서 오늘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고요한 평안으로 우리 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 프랭크 웨슬리
Dedication of Paul and Barnabas · Frank Wesley
인도 아잠가르 출신으로 러크나우 회화 유파의 영향을 받은 프랭크 웨슬리의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은 제작 연대와 소장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파송 자리는 사람의 인정보다 주님의 눈길을 먼저 바라보라는 오늘의 묵상과 담백하게 맞닿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