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치레보다 마음을 먼저 채웁니다
마태복음 15:1-9 · 시편 5 · 잠언 16:21-33
오늘 마태복음 본문 바로 앞에는 예수께서 게네사렛 땅에서 온갖 병자를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의 옷자락에 손만 닿아도 낫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에,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빵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다며 시비를 겁니다. 그 자리에 서서 빵을 들고 있던 제자의 눈으로 이 장면을 한번 보십시오. 며칠 동안 쉬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돌보느라 몹시 지쳐 있었고, 이제야 겨우 빵 한 조각으로 주린 배를 채우려던 참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손 씻는 규칙 하나 지키지 못한 초라한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제자들의 고단함에는 관심이 없고, 장로들의 전통을 어겼다며 매섭게 몰아세웁니다. 무엇이 먼저일까요? 사람의 형편보다 정해진 형식을 앞세운 겁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의 편에 서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느냐고 되물으신 겁니다.
예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들어 그들의 위선을 짚으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말만 하면, 정작 늙고 힘없는 부모는 돌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께 바쳤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내세워, 마땅히 행해야 할 효도와 사랑의 책임을 슬그머니 벗어던졌던 겁니다.
예수께서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해도 마음은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 헛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지켜야 할 규칙의 목록은 빽빽하게 자랑했지만, 정작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할 따뜻한 사랑과 진실한 마음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잠언에서도 비슷한 지혜를 들려줍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부드럽게 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만, 비뚤어진 사람은 겉으로 그럴듯해도 다툼을 일으킵니다. 눈앞의 성을 빼앗는 큰 힘보다, 내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훨씬 더 귀하다는 뜻이지요.
시편 기자의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새벽마다 탄식하며 기도하면서, 입술로는 아첨하고 속에는 악한 생각만 품은 사람들 틈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상한 마음을 그대로 안고 새벽에 엎드려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배에 오신 성도님들도 아침이면 오늘 할 일 목록을 다이어리나 휴대폰에 빼곡하게 적어 내려가곤 하실 겁니다. 오늘 끝내야 할 일들을 쫓아가다 보면,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조마조마하고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불쑥 찾아옵니다. 온종일 목록의 칸을 지워 나가느라 숨이 차오르고, 몸도 마음도 지쳐 버리지요.
그런데 문득 돌아보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하루 동안 해치운 일의 숫자가 아니라 그 일을 마주하는 내 마음의 결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규칙과 일정을 빈틈없이 채우느라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 한번 다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마음에 조급함만 남는다면, 참 허탈한 일일 겁니다. 규칙을 채우기보다 마음을 먼저 드립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손 씻는 규칙을 지키느라 사람을 잃었지만, 예수께서는 배고픈 제자들의 고단한 마음을 먼저 품어 주셨습니다.
주님, 분주한 일상 속에서 규칙과 일정을 채우느라 마음을 잃어버리기 쉬운 저희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겉치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메마른 마음에 따뜻한 사랑을 먼저 채워 주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람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으며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가르치시는 그리스도 · 페터 쾨니히
Christ the Teacher · Peter Koenig
쾨니히, 페터의 20세기 작품 「가르치시는 그리스도」는 영국에 있는 성화입니다. 이 작품은 겉치레보다 마음을 먼저 채우는 오늘 묵상의 메시지와 담백하게 맞닿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