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교회
창조절 2026년 11월 5일 목요일 첫빛예배

기다림 속에서 부르는 이름

시편 70 · 아모스 1:1-2:5 · 요한계시록 8:6-9:12

설교

오늘 시편 본문에는, 다급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부르는 시인이 나옵니다. 그는 지금 너무나 지치고 쫓겨서, 하나님께 제발 지체하지 말고 빨리 와서 건져 달라고 매달립니다. 오늘 아침을 시작하는 우리 마음에도 이런 조급함과 답답함이 불쑥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언제 풀릴지 모르는 문제를 안고 하루를 맞이할 때, 우리는 어디에 마음을 기대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시편을 쓴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자신을 비웃고 넘어뜨리려는 사람들 틈에서, 스스로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상황을 바꿀 힘이 없고 견뎌낼 여유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시인은 자신의 초라한 바닥을 그대로 인정하며 하나님 앞으로 달려나갔던 겁니다. 포장하지 않고 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저 살려달라고만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시인의 불행을 보며 비웃고 조소했지만, 시인은 그 비웃음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눈앞의 일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결국 참된 구원을 베푸실 분임을 믿었던 겁니다. 내 손으로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성경 곳곳에 흐릅니다. 아모스서에는 세상의 불의와 잔혹함을 묵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선포됩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욕심을 채우는 악한 세상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어지러운 세상 한가운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주님께서 모든 역사를 붙들고 계심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과를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자주 지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보낸 연락의 답장을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열심히 준비한 일의 결과를 알지 못해 애태울 때가 그렇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먼저 앞서가 불안해지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기도 하지요. 왜 그럴까요? 내 뜻대로 결과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른다는 것은 내 힘의 한계를 인정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답답한 침묵의 자리가, 비로소 나의 조급함을 내려놓고 더 큰 섭리를 기대하게 만드는 귀한 틈이 되기 때문입니다.

막막한 기다림 속에서도 주님을 부릅니다. 시편의 시인은 막막한 고난 속에서 지체하지 마시는 주님을 불렀고, 아모스는 불의한 세상 속에서 공의의 주님을 외쳤고, 요한계시록의 성도들은 거센 재앙 속에서도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하루, 답답한 마음에 쫓기기보다 조용히 주님의 이름을 불러 보십시오. 불안한 침묵 속에서도 우리를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흔들리지 않는 평안으로 오늘을 걸어가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언제 풀릴지 모를 막막한 기다림 속에서 조급해지는 저희의 아침을 올려드립니다. 답답한 침묵을 지날 때에도 우리 힘을 내려놓고 고요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옵소서. 불안에 쫓기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오늘 하루를 묵묵히 걸어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겟세마네의 그리스도 · 예수 마파(JESUS MAFA), 1973

Christ on Gethsemane · JESUS MAFA, 1973

예수 마파의 「겟세마네의 그리스도」는 1973년 카메룬의 기독교 공동체가 성서 독서에 응답해 각 독서를 고르고 극적으로 재해석한 뒤 사진으로 기록하고 회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리는 오늘의 묵상을 위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그리스도처럼 기다림의 자리로 이끄는 이 그림을 골랐습니다.